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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롱보다 몽롱

applenamu 2024. 3. 19. 09:22

영롱보다 몽롱

허은실 외 11인 글

다시 고백하자면 나는 술이 좋다. 구체적으로는 술 마실 때의 기분을, 정확히는 연분홍 빛깔의 적당한 취기의 몽롱이. 첫 번째 책의 사인 문구에 '백년 헤롱합시다." 를 쓴 이래로 새해가 되면 비슷한 신년인사를 건넨다. 영롱보다 몽롱. 또롱또롱보다 헤롱헤롱이 좋다. p.29 허은실.

"야, 한 번 더 해." p.44, 백세희.

혼술의 강점은 술이 얼마나 좋은 음료인지 다시금 깨닫는 것이다...... 난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을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(중략) 어떤 이들은 혼자 마시면 술맛이 떨어진다는데 나는 반대.... 오히려 좋아. 더 맛있어. p.51

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이 술 앞에서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. 그리고 자신의 의지보다는 '더 큰 어떤 힘' 곧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. p.158-9. 나희덕.

기억을 이어 붙이고 나니, 이 이야기는 소설과 에세이 중간 즈음에 있는 듯하다. 돌아보면 애틋하지만, 애상도 오래되면 질척해진다. 폭음 뒤에 겪는 숙취처럼, 어서 원고를 털고, 맥주의 짜릿한 쾌미를 맛보고 싶다. 이왕이면 잔도 차갑게, 딱 한 잔만. p.192. 신미나.

사랑은 더 이상 내게 술을 청하지 않고 나는 자주 다행을 생각한다. 다행이다, 다행이다....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. 취하지 않는다는 것. p.213. 박소란

알코올이 없는 술은 사랑이 없는 삶과 같아요. p. 233 이원하.

두 음절의 단어는 연인이 서 있는 것 같죠.

잘 봐.... 증발하는 알코올보다 손끝의 힘을 빌려, 얼룩을 문지르는 기분으로 살아갈 것. 그리고 다시 얼룩을 만들 것.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돌아 마주하게 되는 것들. 뭉개지고 잘게 쪼개져 형체를 읽어버린 것들. 인간이, 물질이, 현실이 아닌 것들. 언어는 그 순간 발명된다. 다만 어떤 물방울의 터지는 소리와 같이,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들. 스스로 구원하고 구원받는 것들, 시 쓰는 마음은 술 마시는 마음과 닮았다. p. 276. 강혜빈

📖

'이토록 시적인 술' 이란 주제로
12인의 여성작가들이 술에 취해 혹은 술을 그리며 쓴 글들.누군가는 술에 취해 있는 시간이 취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보다 더 긴 이도 있고 누군가는 술 마시러 간 자리에서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낯선 모텔방 벌거벗은 채로 처참하기도 했다. 호텔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던 그 시절을 끄적인 자도 있고 술로 인해 가족이 죽어나가는?! 경험을 한 뒤 잘 마시는 술을 멀리한 자도 있다.

술은 그냥 술일 뿐이다.
술 쳐 먹고 사람 죽였다는 것은 또 그런 궁색한 변명을 인정해 감형해 주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술을 사탄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.
술은 그냥 술이다. 물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듯, 붉은 육류를 많이 먹으면 암이나 노화 등이 빨리 온다는 것 처럼 술은 그냥 헤롱헤롱 메롱메롱하게 하는 것 뿐.
나쁜 의도는 없다. 나쁜 의도는 인간의 비논리적인 변명일 뿐.

이 책을 읽으며
술 마시고 싶은 것을 참느라 무지하게 고생했다. 허기진 상태에 먹방보며 채널 돌리지도 못하고 고개 돌리지도 못하는 상태라면 이해가 가려나.

많은 이들이 술에 지배당해 살아간다. 몇몇 글쟁이들 삶 역시 굴복당했다. 하지만, 최소한 이 책에 자신의 술 일화를 담은 12인의 여성작가들에게는 보다 엄격하고 그러기에 더욱 그들의 술잔이 글이 삶이 빛난다.

술은 소재는 될 수 있으나 그들이 쓰고자 하는 주제는 언감생심. 술을 좋아하지만, 글 위에 설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이들이 멋지다.

#다자이오사무를 찾아간 #마루야마사다오 처럼 나 역시 술 한 병 들고 작가들을 찾아가 콸콸콸 따라 나눠 마시며 서로의 삶을 건네고 싶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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