그 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
김용택 시집
사랑방
김용택
우리 뒷집 그 뒷집에
사랑방이 있었다.
동네에서 오줌독이 제일 컸다.
그 오줌독에 개 가죽 노루 가죽 담가 기름 빼서
열채, 궁굴채, 장구를 만들었다.
부낭 큰 푸세식 화장실도 제일 컸다.
한겨울 지나면
봄이 되기 전 그 큰 부낭 똥이 넘쳤다.
그 방에서 집 없는
빠꾸 하나씨도 자고
강샌도 자고
마누라하고 싸운 남정네들도 잤다.
담배 찌든 냄새, 발 꼬랑내, 메주 냄새가 섞여
머리가 띵했다.
어머니와 싸운 날 아침 식사 때가 되어도 오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러 가보면
아버지는 모로 누워 있었다.
내가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고
알았다고만 했다.
아버지가 베고 있는 목침에는 담뱃불로 탄 자국이 여기저기 까만 사마귀처럼 뚜렷했다.
어른들이 없는 날 그 방에 가보면
만들다 만 망태, 덕석, 재소쿠리 들이 윗목에 널브러져 있고
실겅에는 고깔, 징, 장구, 소고가 얹혀 있었다.
외로운 사나이들의 피난처,
사랑방에 들면
아무렇게나 마음이 편했다.
닭 서리 닭 삶아대고
허기진 배 굴풋하면 고구마 삶아대고
때로 자다가 일어나
밤밥 해대던 곳.
김 나는 하얀 쌀밥 차려 들고
사랑방 문 열면
남정네들의 근심 걱정같이
담배 연기 자욱한 사나이들의 방,
그 눈물 나던 방 사랑방.
어제 오늘, 뉴욕의 하늘은 마른 벼락을 떨어집니다.
그리고 잊지 않고 뒤늦은 파열음이 따라 울립니다.
삶을 살다보면,
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.
잠시 물러나 바라보면,
천둥소리 이어지고,
'아, 벼락이었구나... ' 하는 인지가 저절로 됨에도
당장 일어난 일들로 인해 허둥대는 경우가 많습니다.
김용택 시인의 시, 사랑방을 읽다보니
그 시절의 시간들이 훗날 이렇게 멋진 시로 읽게 되니
나의 오늘도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? 라는 생각이 듭니다.
특별하지 않은 오늘이
훗날 저리도 아름답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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