창비시선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시집 아버지의 죽음에는 삽이 필요하다 줄담배를 피우며 비오는 날마다 흙이 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저 곤고한 아버지의 삽질을 위해 삽으로 파묻는 죽음의 따스한 손길을 위해 삽, 중에서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미움이 끝난 뒤에도 다시 나를 미워한 것은 잘못이었다 눈은 그쳤다가 눈물버섯처럼 또 내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다 첫 눈, 중에서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위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, 중에서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.. 2024. 2. 27. 이전 1 다음